[2018.10.2–11.11] 우창훈, 6주간의 Live Painting Show │다차원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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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 우창훈, 6주간의 Live Painting Show │다차원 속으로
전시일정 : 2018.10.2 – 11.11 / Opening Reception. 10 4() 오후5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 팔레드서울 2F

우창훈 작가의 전시가 10월 2일부터 11월 11일까지 6주 동안 팔레드서울 2층에서 진행된다.

갤러리 팔레드서울과 우창훈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갤러리 중앙 벽면에 10미터 너비의 대형 캔바스를 설치해 전시 기간 동안 작가의 “Live Painting Show”를 진행하는 것이다. 기존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즉흥적이고 한시적인 라이브 페인팅이 아니라 6주동안 작가가 갤러리에 상주하여 실제 작업실에서 작업하듯 스케치부터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단계를 순차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나머지 벽면은 작가가 그 동안 작업한 작품을 엄선하여 전시 할 예정이다.

우창훈의 Live Painting Show는 전시가 시작 후 삼일 째 되는 날, 오프닝 리셉션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많은 분들이 자리하여 색다른 경험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만물의 불확실성은 사물의 근본 성질로서 수많은 물질 상호간의 다차원적인 인과작용을 말한다. 여기서 물질이란 근본원소를 뜻하며 양자론에 근거한 불가시성, 불확정성, 그리고 기(氣)의 운행 즉 4대(흙, 불, 바람, 불)가 혼합되기 전인 최초의 원인에 해당하는 성질의 움직임을 뜻한다. 거대우주 영역과 미시세계 영역에서 일어나는 입자들의 무수한 자극과 반응, 겹침과 반복으로 인해 돌발적인 창발현상들이 나타날 때 혼돈의 규모는 더욱 커진다.

나의 주된 관점은 극미세계 표현에서 순간의 포착에 대한 방법론이 중요시 된다. 이 때 작업자의 정신적 집중상태가 필요하다. 관찰의 집중을 극미세계로 향할 경우 다양한 혼란스런 형태가 나오므로 집합적 의미로서의 근처, 근방의 표현수단이 더 적합할 것이다. 여기서는 파동과 입자가 바뀌어 나타나며 사라진다. 이런 미시공간에 비해 프랙탈(fractal) 차원은 안정성을 띤다. 프랙탈은 자기 복제기능의 공간성을 뜻한다. 또한 공간의 효율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원근표현에서 다중성이 나타나므로 화면구성이 다양해진다.

예를 들면 인체를 표현할 때 윤곽모서리들에 프랙탈 차원의 음영이 나타난다, 또한 인체에서 일어나는 사건(생명작용-물질의 연관성, 인과성)인 미시적 작용이 표현되며 3차원 인체표현의 화면에 다중적으로 분배되고 혼합된다. 이 방법은 전체소재에 적용되며 구상적 가치가 있다. 또한 작업자의 명료한 의지적 관찰(시각적 직관)의 연속성을 필요로 한다.

일상적 체험인 사실형태의 3차원과 시간차원이 더해진 4차원에 미시세계와 혼돈의 차원을 혼합하면 다중적 세계인 다차원이 나타난다. 이런 차원의 혼합에는 여러 형태의 표현이 가능해진다. 입자, 파동, 부유하는 공간들, 면의 진동들, 말려진 원통 모양의 기하학 문양들이 중첩되면서 연결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다차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즉, 차원들이 상호 연결되어 작용하고 있다. 규모가 큰 차원, 작은 차원, 미세차원의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차원표현을 위한 방법으로 카오스 곡선인 비선형 곡선(복잡계 현상을 해석하는 곡선기하)과 끌개곡선(현상의 자기복제 순환성을 나타내는 곡선)이 사용된다.

미시구조의 미술적 관심은 외곽 거푸집의 형태파악이 아닌 사물성질의 근본을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들 구조를 느끼고 자각하여 드러난 존재를 다차원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고 다중적으로 표현한다. 이 모든 사물의 존재를 느끼는 미의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자유롭고 가벼워진 영혼이 만들어낸 환희의 세계

신항섭(미술평론가)

일반적으로 구상회화 작가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 즉 현상계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자연풍경을 비롯하여 인위적인 물상, 그리고 인물이나 정물 등의 장르로 나누어 그 외형적인 미를 탐색한다. 그리고 일부 작가들은 이들 현상계의 물상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거나 변형 또는 재해석하는 등 새로운 조형적인 모색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는 회화는 곧 시각예술이라는 대전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시각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재현주의 회화의 윤리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창훈은 오랜 동안 기존의 회화적인 이론에 포함시킬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조형세계를 탐색해왔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조형어법을 강구해냄으로써 아주 특이한 이미지의 형태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실상이 어렴풋이 보이지만 기존의 재현적인 방식의 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형태미는 사뭇 충격적이다. 기존의 조형언어 및 어법의 프레임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아주 난해한 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서 인물은 아주 중요한 표현대상이다. 그만의 조형적인 이론은 다름 아닌 인체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 물론 풍경과 정물도 병행하지만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풍경이나 정물도 그의 조형적인 이론을 완성하는데 한 몫을 한다. 인물에 국한할 경우 이론적인 전개에서 어딘가 닫혀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재하는 현상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재현적인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인물 가운데 대다수는 실재하는 모델이 아니다. 그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 이외에는 실존하지 않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이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특정인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인물은 작품의 표현대상임과 동시에 작품의 내용과 중요한 연관성을 가진다. 어느 면에서 실재하는 존재로서의 인물상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큰 의미가 없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형식의 작업이 아닌 까닭이다.

그가 표현하는 이미지는 비실재적이고 비대상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 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마치 유체이탈의 한 순간을 보는 듯싶을 만큼 실상과 허상이 겹쳐지는 미묘한 시각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실상으로서의 현실상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파장이나 울림, 진동, 발열 등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이 함께 한다. 그러므로 몹시 혼란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도 그 인물상을 중심으로 현실공간에서는 볼 수 없는 추상 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심지어는 인물 자체에도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중첩되고 있다. 한마디로 카오스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 구체적으로 형언할 수 없는 유기적인 이미지들이 저마다 꿈틀거리며 화면을 혼란스러운 이미지로 장식한다. 유동적이고 유기적인 이미지들 이 군집하여 비실재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현상계에서는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비실재적인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마치 다중적인 입체공간을 연출하는 작은 거미줄의 구조를 보는 듯싶기도 하다. 무수히 엉켜있으면서도 결코 엉키지 않고 나름대로의 질서가 유지되는 입체적인 거미줄을 연상케 한다. 입체적인 구조의 거미줄은 프랙탈과 유사하다. 작은 구조가 반복되고 확장하면서 형성되는 커다란 구조로 완결되는 거미줄의 입체적인 공간과 시각적인 유사성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비실재적인 이미지는 거미줄과 같은 현상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져 온 조형적인 모색을 통해 발현한 생명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의 결과라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 생명체는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부단히 성장하고 탈각하는 가운데 쇠퇴하고 소멸하는 일련의 생명활동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정해진 회로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자동화공장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움직임, 즉 생명의 순환 및 질서야말로 현상계의 그 어떤 풍경보다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관조하는 생명의 신비 및 거기에서 발설하는 비가시적이자 비물질적인 이미지는 현미경의 세계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실상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 실상의 외연을 감싸고 있는 일종의 아우라와 같은 무엇을 시각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언정 엄연히 존재하는 비실재적인 현상을 시각화하는 일이다. 비 와 눈, 안개 그리고 상고대처럼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실재하는 것임에도 시지각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의 눈앞에 제시한다. 그것은 비물질이라는 명칭으로 현현한다. 분명히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은 물질이 아닌 비(非)물질일 따름이다. 가령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같은 것이다. 그 기운이 열이라고도 할 수 있다면, 그 열은 기체로서의 에너지라는 성격을 가진다. 에너지는 생명이 있는 존재로부터 발생하는 생의 기운을 의미한다. 생명체로부터 발산하는 기운, 즉 생체에너지는 특정의 형태를 갖지 않고 유기적으로 유동한다. 담배연기가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흩날리고 흩어지듯이 생명체에서 나오는 에너지로서의 기운은 유기적이고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이 그가 제시해온 비물질적인 세계는 우연적이거나 상상의 소산이 아니다. 필연적이고 실제적이다. 그의 작품에 표현되는 갖가지 이미지들은 미분화된 세포의 형태를 가진다. 세포와 같은 작은 단위의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프랙탈의 형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근 작업은 여기에서 한 걸음 진전하여 빛의 효과를 생체에너지, 즉 기운과 결합시킴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조형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더불어 한민족의 뿌리, 즉 나의 정체성 그 근원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새로운 제재로 조형적인 지평을 확장해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은 이전의 작업 연장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조형적으로는 기본적인 패턴을 유지하는 가운데 빛의 개입으로 인한 보다 풍부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제재의 도입은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빛에 대한 관심은 결과적으로 생체에너지 또는 의식의 흐름에서 시작되는 비물질적인 이미지 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빛, 즉 태양으로부터 연원한다. 생명체가 발산하는 기운은 모두 빛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 또는 원리를 작업에 적용함으로써 이전보다 한층 발랄하고 경쾌하며 미적 쾌감을 증진시키는 이미지로 만들어놓았다. 최근 작업은 확실히 이전보다 시각적인 즐거움이 증가하고 있다. 모든 형체가 마치 해바라기처럼 빛을 간구하듯이 생명의 기운을 제공하는 광원을 향하고 있다. 여기에는 새로운 감동이 존재한다. 빛과 생체에너지로서의 기운이 만남으로써 한층 명료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화 하면서 더욱 광활한 조형의 변주를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빛은 생체에너지를 더욱 활성화시키는데 기능한다. 일련의 최근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조형공간이 이전보다 쾌적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는 빛에 의해 밝아진 색조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제재가 달라지는데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최근 작업 가운데는 명상 또는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천부경에 근거하는 이와 같은 자세의 인물상은 자기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한 자아의 실현을 통해 이상적인 참된 인간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마음을 맑게 비우고 정신을 집중하는 수행과정에서는 신체의 반응도 일상적인 삶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마련이다. 정좌한 상태에서 신체는 비활성화 되는 듯싶지만 다만 온유한 상태로 바뀔 뿐이다. 신체활동이 억제되는 가운데서 정신은 오히려 활성화된다. 이러한 상태의 심신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파장이 다르게 나타나리란 것은 자명하다. 아우라처럼 신체의 외연을 감싸고 있는 유기적이고 활동적인 의식 활동의 파장이 신체리듬에 어떻게 영향하는가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여기에다 빛이 가세함으로써 신체 및 정신의 에너지는 더욱 활성화된다. 이렇듯이 맑은 정신, 즉 집중된 의식 활동이 지어내는 다 양한 이미지는 현상계의 꽃밭처럼 아름답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한통속이 되는, 즉 일체화되는 경계에서 펼쳐지는 조형세계는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현실적인 이상경이다. 그의 작품에서 정좌한 상태의 인물들은 이렇듯이 완전무결한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을 상정한다. 최근 작업에 등장하는 삼족오나 신단수는 천상계와 자연계 그리고 거기에 생명을 붙이고 있는 인간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우주적인 질서를 설파한다. 이는 한민족으로서의 삶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으로 이어지는 삶에 대한 참된 가치관을 제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하늘과 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인간 삶의 본원적인 문제, 그리고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문제를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완벽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향한 간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해탈을 통한 이상적인 인간상의 실현이야말로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해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정좌를 하고 있는 인물상에서는 하나 같이 맑고 밝은 기운이 팽배한다. 단순히 빛의 문제가 아니라 맑은 정신에서 비롯된, 건강한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의 기운이 주변을 밝고 맑게 비추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삶에 대한 긍정과 환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험난한 고초로 점철하는 오랜 수행의 길에서 문득 만나는 삶에 대한 일체의 의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에 일어나는 희열, 그 환희의 감정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최근 작업은 모든 현실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 자신의 가벼운 심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우창훈
광성고등학교, 중앙대학교 회화학과 졸업

<개인전>
1987년 ~ 2018년 개인전 20회

<그룹전>
2018년 신년기획 초대전 – Sciensense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17년 JAM Project 현대국제교류전 6개국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14년 현대미술 방법전 (성남아트센터, 성남)
2012년 한국미술 50년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08년 화가의 30년 그 아름다운 변화 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07년 1970년대 한국미술 초대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05년 2005 서울 미술대전 (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2003년 ‘누드의 미학전’ (세종아트센터, 서울)
2002년 ‘컬렉션을 위한 제안전’ (가진화랑, 서울)
2002년 The Nude 전 (갤러리 사비나, 서울)

<아트페어>
2014년 Karlsruhe Art Fair (칼스루에 아트페어, 독일)
2013년 Scope Miami Art Fair (아트 마이애미, 미국)
2013년 Koln Art Fair (퀼른 아트페어, 독일)
2013년 New York Affordable Art Fair (어포더블 뉴욕. 미국)
2012년 Context Art Miami / Art Asia Miami (아트 마이애미. 미국)
2012년 서울 오픈 아트페어 (COEX. 서울)
2010년 The Sydney International Art Fair (시드니. 호주)
2007년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COEX. 서울)
2006년 Gongju International Art Fair (공주 국립미술관)
2005년 Europ’ Art Fair (제네바. 스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