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6-24] 김윤정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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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정 개인전_

성장과 순환의 흔적”

인간은 왜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타인이 규정한 세상의 규율에 맞춰 살아야 하는가. 사회 속에서 수많은 시선들의 억압 가운데 자유를 박탈당하고 타율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왜 자연 본능에 대항하는 문명의 규칙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사회적 환경과 개인이 가진 내적 이상의 불일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피로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자연을 동경하며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려 한다.

자연이라는 대상을 작가 개인만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하는 문제는 참으로 오래 된 예술가의 숙제였다. 화가가 그린 풍경은 이 세계와 평행을 이루는 또 다른 세계였고, 창조하는 신의 모방이기도 했다. 혹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내적 성찰을 이루는 또 다른 방식이 되기도 했다. 김윤정 작가의 작업 역시 환경과 자아의 대립을 조화로 이끌어가려는 노력이다. 자연과 분리된 삶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작업을 해나간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아닌 원초적 생명으로서 개인을 찾기 위한 모티브로 자연의 형상을 선택했다. 김윤정이 화면에 옮긴 자연은 심연처럼 검고, 깊고, 외롭다. 반복된 노동으로 새겨진 상징적 형상은 자연의 기(氣)를 넘어서 영(靈)과 같은 생명의 기운이 감돈다. 그 생명은 아직 현실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아득한 기원과 같다.

작가는 자연의 근원적인 힘을 성찰하고 그것을 하나의 형상으로 이끌어 내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다. 목탄을 사용한 불규칙적인 드로잉과 여백에 보이는 얼룩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노동 시간의 궤적을 보여준다. 작품 속 시간의 흔적은 시간 속에 탄생과 생장을 거치는 생명의 과정에 대응한다. 생명에서 추출한 요점은 흔적, 즉 끊임없는 성장과 순환의 기록이며, 한 생명의 생장과정과 대응하는 작가 내면의 변화에 대한 상징적, 서정적 표현이다. 화면 위에 목탄의 자국이 남는 정도에 따라 짙은 흑색이 만들어진다. 검은 밤하늘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듯이, 빛이 반사되지 않는 어둠은 가없는 공간을 연상케 한다. 화면 위의 깊은 어둠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종이 표면의 이면을 선사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 속에서 내면의 자연의 운행을 선으로 옮기고 화면에 안착시킨다. 그것은 아름답게 다듬어져 나오지 않고, 거칠고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분출된다. 이렇게 작품 속에는 작가라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 동시적으로 반영된다.

이러한 김윤정의 ‘흔적’ 연작은 사회에 기대와 규율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을 자연으로 회귀함으로써 극복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안식처로의 회귀는 한편 안락한 퇴행에 머물 수 있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원인은 개인 내부에 있지 않음에도, 편안함 속에서 극복보다는 도피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에 깃들어 있는 자연의 발견이 소외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치유의 과정 속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편적 측면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작가에게 자연으로부터의 통찰이 작가에게 하나의 치유의 방식인 것처럼 타인에게도 휴식과 치유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작품은 이러한 소통을 향해 말을 걸고 있으며, 작가의 위안이 타인에게 전달될 때 고립을 넘어서 공존으로 나아갈 것이다.

매끄럽고 직선적인 것, 인위적인 것이 주는 매력은 금방 피로감을 불러온다. 김윤정 작품의 부드러운 목탄이 안착된 입자가 굵은 종이는 편안함을 준다. 나무의 섬유들이 겹쳐진 종이(장지)의 표면 사이사이로 불에 태운 나무(목탄) 가루가 파고들고 종이를 긁어내어 보풀을 만들기도 한다. 자연재료의 질감과 얼룩이 남겨진 여백이 이루는 시각적 메시지는 인간의 문명이 침투할 수 없는 시간을 담고 있다. 이것은 사회 이전에 자연 그 자체의 시간이며, 타인과의 관계를 넘어선 시공간에서 온전한 자유를 향한다. 그 자유는 아직 알 속의 생명처럼 움직임 없이 성장하고 있으며, 때가 되었을 때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을 만끽할 것이다.

팔레드서울_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