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14-19] 시작:册香에 끌리다

슬라이더 2016

전시제목: 시작:册香에 끌리다
전시일정: 2017.3.14(Tue)~2017.3.19(Sun)
전시장소: 팔레드서울 B1      

작가는 정연(整然: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다)하게 살고싶다고 했고, 적어도 그 바램은 작품안에서 100% 발현되었다. 신기했던 것은 그런 작가의 생각이 과하고 넘치지 않았다는데 있다. 보통 작가가 이러한 주제로 작업을 할 경우, 작품을 강박적으로 통제하게 되어 보는이로 하여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작가의 드로잉은 결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2017년 오늘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정연하게 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작품이 더 크게 다가온다.

갤러리 팔레드서울 큐레이터 강혜영

질서(秩序) 정연하다(整然)하다, 고 할때의 정연整然(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다)한 성질을 정연성이라고 임의로 명명한다면, 주제면에서 작업들은 정연整然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실 이 단어에 대해서는 책에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근간의 작업들은 책에 일부분 혹은 전체를 빚지고 있다. 작업의 기조가 된 영감, 소재, 주제, 조형요소 등의 것들이 책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 이전 수백, 수천 년의 인간 역사 속에서 가장 큰 권위를 인정받고, 그 어느 미디어보다 합리적이면서 효용성 있는 미디어로 존재해 온 것이 책이라 본다. 책이라는 형태가 완성되어 페이지라는 좁은 공간에 수없이 많은 정보를 담게 되자, 시공간을 뛰어 넘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그 진보의 역사의 많은 부분을 책이라는 미디어에 수혜를 받아 이룩해 왔다. 그런 책에 대해 개인적으로 정서적, 심리적 애착이 크다. 책의 컨텐츠에 대한 호불호나 장르의 문제를 넘어서서 그저 책이 좋고, 그 형태와 기능의 균형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책이 가지는 정연성에 대한 애착이고, 이는 그 미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보는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정돈되고 정리된, 자연스럽고 질박한 면면들의 모아 그러한 단어로 임의 규정해본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찾아가려 하고 있다.

정연성은 책에서 받은 단어이지만, 좀 더 폭 넓게 정의하고 싶다. 이는 작업 시의 세계관 혹은 원망願望하는 세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혼란스러워 보이는 시국이나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특정한 큰 흐름 속에 자연스러운 자기 자리를 찾아 간다고 여겨졌다. 자신이 있어야 할 시간에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영웅이라는 영화의 세리프처럼, 당연한 것,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그 자체로 거스름이 없이 힘 있으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시간이라는 큰 불가역적인 규칙 속에서 그 법칙의 정연함을 주장한다. 물은 중력방향으로 떨어진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온다. 그 법칙은 너무나 예외 없이 정돈되어 있어서 심지어 무기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안에서 사람은 살아서 자유의지로 불규칙하고 혼돈스럽게 움직인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나 문화도 그 자유분방함과 무질서함은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보다 먼 시공간에서 보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결국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어 시간 속에 정연한 큰 흐름을 형성한다.

작업 이미지들은 이러한 생각을 담고 있다. 이미지 안의 큰 틀은 다각형으로 기하학적이다. 그리고 그 안은 비어 있다. 이 틀을 사람이 인지함으로써, 움직임으로써 그 안이 채워져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정해진 흐름대로 간다는 정반합의 역사관이나, 단선적이고 정형화된 모더니즘의 이미지로써 채워진 것은 아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본 면(틀)을 채우는 것은 사람의 손이고, 자연스럽게 시간을 들여 채운 것이다. 일견 자로 잰 듯이 정돈된 선들은 가까이서 보면 분말의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일한 재질이나 색채로 채운 폐쇄된 기하학적인 면이 아니다.

이미지를 보다 원경에서 보면, 이를 채우는 조형요소는 선과 원이다. 그러나 양자 모두 실재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선부터 보면, 이미지 속의 ‘선’은 한 획을 그어 그린 것이 아니라 두 선이 양쪽에 있어 그 사이에 형성된 ‘공간’을 지칭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은유하기 위한 ‘선’이다. 사람이 움직이는 의지, 동기, 노력, 생각 등은 보이지 않는 은유의 대상인 것이고, 그것들이 합쳐졌을 때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큰 틀인 면이 드러나 보이길 바랐다. 그리고 특정 영역에서 잉크의 재료가 바뀌는 공간이 있다. ‘생각’ 중 몇몇 작업에서 원형으로 밝은 부분들이다. 이 원도 실제로 폐곡선으로 그린 원이 아닌, 공간이나 재질이 바뀌면서 ‘보여지는’ 원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원은 존재하지 않으며, 분말의 재질이 바뀐 부분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한 개인에게 인식에 외부 요소가 영향을 끼치는 영역을 의미한다. 면을 이루는 이 ‘존재하지 않는 (즉, 두 선들 사이에 여백으로 이루어진) 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 하나의 선이다. 연결되어 좁은 평면에서 차곡차곡 쌓은 축적된 형태이다. 사람의 사고가 그러하듯이 각각의 ’선‘의 처음과 끝은 미지수 이다. 인식이 한 인식의 차원에서 다른 인식으로 넘어가는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비논리적인 과정은 그 시작점과 끝점은 열어두었고, 그것은 작은 구멍이나 속이 빈 원으로 작업 속에서 표현되어 있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생각’과 ‘티타늄,로즈’ 라는 제목의 작업들은 흑연, 티타늄, 동분, 흰색 분말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잉크로 펜 드로잉한 것이다. 인공적인 안료를 사용하지 않고 보다 자연이 가진 원초적인 색깔을 그대로 가져오기 위한 의도로 시판되는 잉크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았다. 아홉 작업 중 유일한 꼴라쥬인 ‘진공’은 조형적인 요소는 이형을 띄지만, 축적이라는 컨셉 부분에서 다른 작업들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임의로 정한 책의 페이지들을 서로 붙여서 딱딱한 종이 블록을 만든 후, 그것을 그라운드 처리된 면 위에 접착했다. 파편화된 책의 일부분은 기억의 일부분을 상징하며, 이것이 思考의 진공을 은유하는 여백 속에서 표류하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길 원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기본 영감은 스테판 츠바이그의 ‘로열 게임’에서 왔다. 아티스트 북들은 직접 수작업 제본한 책들 이다. 이 책들은 시간의 굴레 속에 갇힌 인간이지만, 오히러 그렇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역설적인 힘과 에너지에 관한 내용의 그래픽 노블들이다. 컨설티나 북이라는 형태를 이용하여 시간의 영구 반복되는 시간성을 담은, 형식과 주제의 일치를 꾀한 작업들이다.

 

각각의 작업은 한 개인의 축적된 세계관, 혹은 인식의 형태를 잘라 가져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근간의 작업은 美醜를 떠나 그저 자연같은 혹은 책같은 정연성을 따라 살아가고 싶은, 그 안에서의 美를 찾고 싶은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최혜정

서울대학교 미대 조소과 졸업

에꼴 에밀 꼴 졸업

시립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 재학

개인전 <시작: 册香에 끌리다>, 팔레드서울 갤러리 (2017.3.14-19) 외 10회

그룹전, 공모전 쾰른 그룹전, 갤러리 Kunstraub 독일 쾰른(2016. 11) 외 13회

아트페어 Codex (미국) 2017.2.5.-8 외 1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