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6. 07-21] 권순익 개인전

kwansi

 

제목: 원(圓)의 원(圓)

세상의 모든 것은 원으로 시작하고 또 원으로 끝난다.

 

근대 회화의 문을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폴 세잔은 “세상의 모든 것은 원과 원뿔, 그리고 원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뜻 그 이전 세대의 그림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지극히 평범히 보이는 세잔의 풍경화와 정물화들은 그의 이런철학을 듣고 다시 보면 왜 그가 현대 회화의 문을 연 화가라고 여겨지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바로이 한 마디로 세잔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던 이전 시대의전통을 깨 부수고 “사물의 본질을 찾아” 그린다는 근대 회화의가장 중요한 개념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생 빅투아르 산MontSanite-Victoire 1902-1904>이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Pommes et Oranges 1895-1900>은 인상파와 같은 시대를 살며 교류했지만 빛의 변화가 주는사물의 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갖던 인상파와는 달리 빛의 변화와 상관없는 사물의 근원적인 형태를 찾는 것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졌던 세잔의 이러한철학을 이해 할 수 있게 해 주고,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가 어떻게 여기에서부터 태어나게 되어 진정한의미의 현대 회화가 시작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해 준다.

 

이렇듯 세잔은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의 ‘눈에 보이는’ 형태를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가장 본질적인 형태를 찾아가다 보면 나오게 되는 것이 ‘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반대로, 그 사물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의본질을 찾아 가다 보면 얻게 되는 가장 근원적인 결과물은 무엇일까? 작가 권순익의 작품들은 그 역시‘원’이라고 답하고 있는 듯 하다.

 

모든 것은 원으로 시작하고 또 원으로 끝난다 – 세잔은 간단히 사물의 형태를단순화 하다 보면 원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사물은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원으로 구성되어있을지 모른다. 난생(卵生)인 동물은 말 할 것도 없지만,그렇지 않은 동물들 조차도 원의 형태를 가진 난자와 정자의 만남으로 생명을 시작하고, 원의형태를 가진 세포들로 그 생명을 이어간다. 죽음 뒤에 우리는 길고 오랜 시간 동안 바람이라든지 비의도움을 받아 결국은 아주 작은 원형의 모래알의 모양으로 자연에 되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은 또한 생명체와사물 사이의 경계가 어찌 보면 그리 엄격하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러한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구성까지도 결국 모든 생명체와 사물은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것은 원에서 시작해서 원으로 끝난다고 우리는 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순익의 작품을 보는 것은 마치 우리가 사는 세계의 마음 속을 현미경을 통해서 아주 깊은 바닥 끝까지 관찰하는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볼 때 그의 작품은 세모의 산이기도 하고, 네모의 바다이기도 하고,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의 흙이기도하며 때로는 열린 창으로 쏟아지는 그저 빛이기도 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볼 때 그의 작품은 그가한없는 무아지경에서 창조해 낸 끊임없는 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물 속에서 반짝이는 생명력으로가득 찬 개구리의 알처럼 입체의 원 속에 또, 그리고 또 원을 품고 그의 작품들은 결국 나인지 산인지물인지 구별할 수 없는 그저 하나의 생명으로, 또 생명과 같은 죽음으로 보는 이에게 다가온다.

 

오랜 세월 동안 ‘자아’를 찾는 구상작업 끝에 그가 원을 바탕으로 한 추상 작업에 이르게 된 것은 그러므로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번전시는 작가의 신작들을 소개하는 전시이지만, 보는 이들이 이 전시를 통해 지난 30년의 작업 동안 작가가 무엇을 찾고자 했는가, 그리고 이 전시를도약판 삼아 앞으로 무엇을 계속 추구해 갈 것인가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남은진